중장년 재취업 성공사례, 마흔 넘어 찾은 두 번째 길

그날 문득, 멈춰 서고 싶어졌다

서른아홉이 되던 봄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정리해고’라는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말을 들었고, 저는 담담하게 책상을 정리했습니다. 미련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오래 전부터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다들 “괜찮냐” “힘들겠다” 말해줬지만, 정작 저는 그날 저녁에 라면을 끓여 먹으면서 마음이 꽤 평온했던 걸 기억합니다. 이상하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잠시 쉬는 기분이었거든요.

며칠은 정말 잘 쉬었습니다. 낮잠도 자고, 미뤄뒀던 청소도 하고, 혼자 마트에 가서 장도 보고. 혼밥을 즐기던 제가 다시 한 번 혼자만의 시간에 적응해가는 과정 같았어요.

무언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는 감각

그런데 이상하더라고요.
다섯 번째 월요일이 오던 날, 평소처럼 느지막이 일어나 텀블러에 커피를 내리고 거실에 앉았는데, 이상할 정도로 정적이 느껴졌습니다. 늘 혼자 살았지만 그날은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하루’처럼 느껴졌어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고, 누군가 제가 하루 종일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 상황. 어쩌면 그것이 자유가 아니라 공허였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카톡도 조용했고, 메일함은 비어 있었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습니다. 내 존재가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스쳤습니다.

이력서를 열어보면서 든 회의감

그날 저녁, 정말 오랜만에 이력서를 열었습니다.
갱신도 안 된 프로필 사진과 몇 년째 업데이트되지 않은 경력란을 보면서 멍해졌습니다. 예전엔 스스로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는데, 지금은 어떤 문장을 넣어도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쓸모없는 사람은 아니지?”
작은 한 줄을 쓰면서도 자꾸 마음속에서 물음표가 생겼습니다.

채용공고는 넘쳐나는데, 하나하나 클릭할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생각, 경력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 너무 늦은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앞섰습니다. 도전이 아니라 포기가 빠른 날들이 반복됐습니다.

그래도 뭔가 해봐야겠다는 단순한 결심

결정적인 변화는 어느 날 늦은 밤 산책을 하다가 왔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어린 시절 문득문득 떠올랐고, 첫 직장 면접을 보던 날의 떨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의 저도 별다를 것 없었는데, 도전하고 말하고 설득하던 그 모습이 떠오르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그날 이후로 노트를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잘했던 일, 좋아했던 일, 사람들이 제게 칭찬했던 부분들.
정리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저는 말보단 글이 편했고, 구조를 잡고 사람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걸 좋아했더라고요.

그동안 회사에서 작성했던 문서들, 보고서, 기획안, 전부 그 능력의 연장이었습니다. 그걸 포기하고 있었던 게 아쉬웠습니다.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블로그를 하나의 포트폴리오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엔 그저 일상이나 제품 리뷰를 올렸다면, 이제는 제 경험을 정리하고 콘텐츠처럼 꾸며봤습니다. 작은 팁도 넣고, 가독성 있게 구성해보는 연습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콘텐츠 기획’이라는 단어에 끌렸습니다.
처음에는 유튜브로 관련 강의를 보기 시작했고,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 수강도 했습니다. 정말 많은 게 새로웠고 어렵기도 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웠습니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급한 취업 준비도 아니고,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것’이었으니까요.

작은 일 하나가 새로운 문을 열어줬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지역 커뮤니티 공고에서 ‘콘텐츠 교육 프로그램 보조 강사 모집’이라는 글을 봤습니다. 처음엔 내가 해도 될까 싶었지만, 나와 비슷한 중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라는 말에 용기를 냈습니다.

면접 때, 저는 스스로 만든 블로그 글들을 인쇄해 보여드렸고, 어떤 방식으로 기획을 하고 구성했는지 설명드렸습니다. 과거 회사 경험도 말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제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를 중심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뒤 연락이 왔습니다.
합격이라는 말에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그날 밤, 출근용 가방을 챙기며 혼자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일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그 일을 시작으로 점점 연결이 생겼습니다.
SNS 운영 보조, 소규모 단체의 홍보문 기획, 공공기관의 뉴스레터 제작 등. 수입은 예전만큼 많지 않았지만, 다시 ‘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새벽에 카페에서 노트북을 열고 글을 쓸 때면, 회사 다닐 땐 느끼지 못했던 몰입감을 느꼈습니다. 나만의 속도로, 내가 선택한 일들을 해낸다는 것이 꽤 단단한 행복이었습니다.

혼자 일하는 건 외로움도 있지만, 자유가 더 컸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일상이 생긴 것 자체가 제게는 큰 위로였습니다.

아직은 과정이지만, 나는 나를 믿기로 했습니다

지금도 완벽하진 않습니다.
일이 끊길까 불안한 날도 있고,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안 설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전보다 ‘나를 믿는 감각’이 생겼습니다.

과거엔 누군가의 평가나 승진으로 나를 규정했다면, 지금은 스스로를 점검하고, 내가 오늘 얼마나 정직하게 집중했는지를 기준으로 삼게 됐습니다.

나이는 숫자라는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 알겠습니다.
서른아홉의 제가 마흔셋이 된 지금보다 더 무기력했으니까요.

재취업 준비 과정 정리

단계 내용 사용한 방법/채널
마음 정리 퇴사 이후 방향성 고민, 재취업 결심 산책, 자기 대화, 일기
역량 점검 잘했던 일 파악, 과거 업무 정리 노트 작성, 블로그 정리
능력 개발 콘텐츠 제작 학습, 포트폴리오 제작 유튜브 강의, 블로그 운영
기회 탐색 첫 활동 찾기, 소규모 프로젝트 지원 지역센터 공고, 커뮤니티 서칭
실제 참여 SNS 홍보, 뉴스레터 기획 등 실무 프리랜서 일 수행 비정기 프로젝트 진행

마음속에 남은 단 하나의 문장

“나는 나를 다시 고용했다.”

누군가 내게 기회를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문을 두드리고, 나 자신을 채용한 셈이었습니다.

아직도 가끔 고요한 오후가 무섭습니다.
그 정적이 다시 불안을 불러올까 두렵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됐습니다. 그 고요 속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걸 마주할 수 있다는 걸요.

중장년의 재취업은 누군가에게는 생존이고, 누군가에게는 전환점이고, 제게는 ‘스스로를 회복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길이 쉽진 않겠지만, 저는 오늘도 새벽에 커피를 내리며 작은 문서를 엽니다.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글을 쓰고, 조금 더 진심 어린 작업을 하면서,
‘오늘도 나를 고용하자’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 말이, 요즘 제 하루를 버티게 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