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처럼 시작된 어느 오후
그날은, 그냥 그런 날이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고, 별생각 없이 나왔는데 유난히 바람이 시원했죠. 점심 먹고 나서 커피 사러 나왔다가, 뜬금없이 주민센터 앞에서 멈춰 섰습니다.
아무 이유 없었어요. 건물 안이 조용해 보여서 그냥 들어가봤어요. 뭐랄까, 사람이 많은 카페보다 차라리 관공서가 마음 편한 날이었달까요.
들어가자마자 벽에 붙은 인쇄물이 눈에 들어왔어요. 매끈하게 코팅된 것도 아니고, 그냥 프린터로 뽑은 흔한 A4용지 한 장. 거기에 ‘문화누리카드’라고 적혀 있었죠.
처음엔 무심하게 스쳐봤다가, 다시 돌아서 읽었습니다. 몇 줄 읽고 나서 멈칫했어요. “연간 11만원, 문화·여행·체육 분야에서 사용 가능.” 그 문장을 보고도 한참 멍하니 서 있었습니다.
진짜, 나도 받을 수 있는 걸까?
사실 그런 복지 혜택은 늘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졌거든요. 무언가를 신청하는 건 늘 귀찮고, 거절당할 것 같은 막연한 불안이 있었죠. 그래도 이날은 좀 달랐어요. 그냥… 해보자. 심플하게.
창구에 앉은 직원분이 아주 담백하게 말해줬어요. “신분증만 주세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신청 완료 문자가 바로 왔고요. 며칠 후에 카드도 도착했어요. 생각보다 빠르고, 생각보다 너무 간단해서 어색했죠.
근데 막상 뭐에 쓰는 걸까?
카드를 손에 쥐었는데, 마음이 이상하더라고요.
‘이걸… 써야 하나? 뭐에 쓰지?’
기분이 좋은 건 맞는데, 쓰려고 하니까 막막했어요.
검색해봤죠. ‘문화누리카드 사용처’
어휴. 정보는 많은데, 정리가 안 돼 있었어요. 어떤 건 된다고 했다가 또 안 되고, 블로그마다 다르고. 결국 확실한 건 제가 직접 써보는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어요.
첫 사용은 아주 소박했어요. 동네 중고서점. 예전에 한두 번 가본 곳이었죠. 책 한 권 들고 계산대에 가서 말했어요. “문화누리카드 되나요?”
점원이 잠깐 멈칫하더니, 단말기를 이리저리 만졌고… 성공. 그 짧은 순간이 좀 묘했어요. 작지만 확실한 성취감? 책 값은 7,200원이었는데 기분은 백배였죠.
내가 실제 결제 성공한 곳 TOP 5
순위 | 사용처 | 이용 목적 | 결제 가능 여부 | 체험 후기 |
---|---|---|---|---|
1위 | CGV | 영화 관람 | 가능 | QR 결제도 지원되어 편리 |
2위 | 교보문고 | 도서 구매 | 가능 | 온라인몰 사용도 가능 |
3위 | 한국관광공사 | 기차·버스 예매 | 가능 | 코레일·고속버스 예매 시 유용 |
4위 | 국립현대미술관 | 전시 입장 | 가능 | 신분증 지참 필수 |
5위 | YES24 | 공연 티켓 예매 | 가능 | 연극, 뮤지컬 가능. 단, 일부 공연 제외 |
혼자 본 영화 한 편, 그리고 감정의 틈
며칠 후엔 영화관에 갔습니다. 진짜 오래간만에. 요즘 영화관 자주들 안 간다고 하지만, 저에겐 여전히 특별한 공간이거든요. 좌석에 앉아서 광고가 끝나고, 스크린이 천천히 밝아질 때 그 기분. 뭐랄까, 나도 살아있구나 싶은 기분이에요.
영화를 보는 내내 집중이 잘 안 됐어요. 내용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가 문화누리카드로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게 자꾸 마음을 건드렸죠. ‘이 시간, 이 공간. 나한테도 이런 게 허락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눈물이 찔끔 나더라고요. 민망해서 혼자 고개 돌렸어요.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물론 늘 순탄한 건 아니었습니다. 인터넷에 사용처라고 되어 있어서 찾아갔는데, 막상 결제 안 된다는 말도 들었고요. 점원들도 처음 보는 카드라며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했어요.
‘괜히 나만 이상한 사람 된 거 아니야?’ 그런 생각에 위축되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좀 더 철저하게 준비했어요. 미리 전화해서 확인하거나, 앱에서 검색해서 리뷰도 읽어보고.
문화누리카드 앱이 있긴 한데, 솔직히 사용자 입장에선 좀 불편했어요. 정보도 잘 안 나와 있고, 정리도 애매하고. 그래서 내가 직접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블로그에 간단하게 ‘문화누리카드 사용 후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어디서 썼는지, 결제 잘 됐는지, 뭐 샀는지.
그 글에 사람들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어요. “진짜 도움됐어요.” “이 가게 아직도 되는지 아시나요?” “인터넷 서점은 어디가 되죠?”
어쩌다 보니, 제가 ‘문화누리카드 내비게이터’처럼 되었어요. 그게 나쁘진 않았어요. 오히려 감사했어요.
지금은 자연스럽게 생활의 일부가 됐어요
이제는 연초만 되면 문화누리카드 발급 신청부터 챙깁니다. 사용 금액도 예전보다 늘어서 더 알차게 쓸 수 있게 됐고요. 요즘은 공연 예매할 때도 쓰고, 근처 문화센터 강좌도 신청해봤어요.
“나는 원래 문화 같은 거 잘 몰라”라는 말, 예전엔 아무렇지 않게 했는데 지금은 좀 다르게 느껴져요. 알고 보면 누구나 문화인이더라고요. 나도 그렇고요. 단지 그걸 누릴 기회가 적었을 뿐.
심지어 요즘은 동네 소극장도 자주 찾아갑니다. 객석에 앉아서 배우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냥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게 좋더라고요. 어떤 날은 스탭롤이 다 끝날 때까지 못 일어났어요. 내 마음이 무언가로 꽉 차는 느낌. 이건 돈으로도 설명 안 되는 경험이에요.
머릿속에 떠오르는 마지막 문장 하나
예전에 봤던 다큐멘터리에서 어떤 어르신이 이런 말을 했어요.
“사는 게 고되더라도, 가끔은 마음이 따뜻해지는 일이 필요해.”
문화누리카드는 저에게 그런 따뜻함의 한 조각이 되어주었어요.
정말로.
누구에게는 그저 몇 만 원짜리 카드일지 모르지만,
저에겐 ‘나를 위한 시간’을 회복시켜준 시작점이었어요.
앞으로도 매해 이 카드를 챙길 생각입니다.
절약의 수단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요.
그 카드가 주는 건 돈이 아니라, 아주 조용한 위로라는 걸…
이제는 알 것 같아요.